이것은  내 아버지가 유일하게 대놓고 후회하는 일로 나는 언젠가 그에게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아버지는 왜 혜지 아저씨에게 닥치라고 다그쳤을까. 말하는 데 사용할 에너지를 아껴서 사는 데 집중하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그의 상태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내 질문을 듣고 조금 생각을 해보더니 그것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그러게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참 후회가 되지만 그때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내 아버지는 말했고 그건 아마 사실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무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냥 하던 대로 했겠지. 말하자면 패턴 같은 것이겠지. 결정적일 때 한 발짝 비켜서는 인간은 그다음 순간에도 비켜서고... 가방을 움켜쥐는 인간은 가방을 움켜쥔다. 그것 같은게 아니었을까. 결정적으로 그, 라는 인간이 되는 것. 땋던 방식대로 땋기. 늘 하던 가락대로 땋는 것. 누구에게나 자기 몫의 피륙이 있고 그것의 무늬는 대개 이런 꼴로 짜이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직조해내는 패턴의 연속, 연속, 연속.


  얼마나 오래 여기 머물렀는지 모르겠다.

  더는 싫다. 여기 있고 싶지 않다. 디디의 죽음을 생각할수록 나의 삶을 생각한다. 어떻게 살았나. 어떻게 사는가. 살아서 그것을 생각한다. 보잘것없는 사물이 담긴 가방을 무릎에 올린 채 버티고 있지만 내가 살아있어. 내 아버지도 어머니도 살아있다. 두 사람의 부고를 받은 적이 없으니 그들은 여태 그 집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소변 냄새와 어머니의 마비가 고여 있는 공간에서. 조금의 생기도 느낄 수 없어 거의 죽음처럼 여겨지는 그 공간이 저 문 바깥에 있다. 그것에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 누군가 골목을 지나갔다. 가로등이 켜졌다. 그리고 방금 꺼졌다. 나는 다시 바깥을 생각한다. 사람들이 거리낌없이 들이켜는 공기로 가득한 곳, 과도한 호흡으로 가득한 거리를 생각한다. 디디를 먹어치운 거리. 디디의 목을 부러뜨리고 머리를 터뜨린 거리. 거기엔 의미도 희망도 사랑도 없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여기는 다른가.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곳, 여기 무엇이 있나. 벌거벗은 벽이 있고 내가 있고 의자가 있고 내 잡동사니가 있다. 나는 이것들과 더불어 이곳에서 먹고 자고 이따금 눈살을 찌푸리며 기묘한 욕을 내뱉는다. 공중에 대고 침을 뱉듯이. 그리고 그 침은 대개 내 눈썹과 내 턱으로 떨어지지.

  내가 여기 틀어박혔다는 것을 아는 이 누구인가.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므로 나는 내 발로 걸어나가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그것을 생각해왔다.


- 황정은, 웃는 남자, <아무도 아닌> p.184-185






열광, 열광하고 있는 황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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