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
새의 깃털처럼 머리가 하얗게 센 다음에 옛 애인을 만나고 싶다던 중년의 직장 상사를 그녀는 기억한다. 완전히 늙어서... 한 올도 남김없이 머리털이 하얗게 세었을 때, 그때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면 꼭 그때.
젊음도 육체도 없이.
열망할 시간이 더 남지 않았을 때.
만남 다음으로는 단 하나, 몸을 잃음으로써 완전해질 결별만 남아 있을 때.
한강 소설 <흰>, 백발, p.91
나는 옛 연인을 만난다면
너무 늙어서 다리에 힘이 없어서 못걷기 직전에 만나고 싶다.
내 발로 걸을 수 있는, 거의 끄트머리쯤 되는 시간일 때.
좋은 봄날 벚꽃잎이 눈처럼 날리거나
좋은 가을날 낙엽 밟으면 바삭바삭 소리날 때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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