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우리 어린이들을 괴산에서 데려와서
촛불집회에 다녀왔다.

어린이들은 고맙게도
종로3가역에서 내려서
종각역 안국역 광화문 경복궁역까지 가는 길에,
여덟시 반부터 열한시 반까지 세시간 동안
똥마렵다고도 안하고 쉬마렵다고도 안하고
의젓하게 같이 걸어주었다.


+

한결이가 정말 많이 컸다.
엄마 옆에서 떨어지지도 않고
힘들다고 한번도 얘기안하고 잘 걸어주고,
지하철이랑 식당에서
천방지축 온유를 잘 달래고 같이 놀아줘서,
실제로 힘이 되었다.

질풍노도 온유 양이
마구 치받으면서 빠지는 샛길을 막고 우리로 몰아넣는
양치기 소년 한결이 >_< 크흑

여덟살 첫째와 다섯살 둘째는
양치기소년과 양 만큼의 차이가 난다 >_<


+


종각역에서 안국역 가는 방향.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서 같이 걸었다.

온유가 내 귀에 소근소근
"엄마, 돼지가 나온대." 한다.
"퇴진하라" 는 소리가 "돼지나와" 로 들렸나보다.
한결이랑 둘이 촛불들고
"돼지 나와! 돼지 나와!" 하면서 깔깔 웃는다.


+


사람들이 아이들한테 마음을 써주었다.
사람 마음이 같은게,
나도 어린아이가 보이면 그저 먹먹하고 고마웠는데,
그 마음 같았나보다.

함께 걸어가던 사람들이 연신 애들 손에
(아마도 걷다 지치면 먹으려고 준비해온 간식일)
과자와 초코바를 쥐어줬다.

받은 과자는 쉬면서 먹기도 하고
온유 또래의 어린 아이를 만나서
기쁘게 나눠줬다 :-D

초에 불이 꺼진 사람들이
"애기한테 불 받고 싶어요!" 하면서
일부러 애들 초에서 불을 붙여가기도 했다.

차벽 너머 경찰아저씨는 손을 흔들어줬다.

촛불을 끄려고 장난치는 온유한테
옆에서 보던 어르신이
"이거 네가 가져라!"하면서 들고 있던 led 촛불을 주셨다.
온유는 즉시 광선검을 든 제다이가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한테마다 자랑하고 휘두르면서 무술 무술 하길래
"온유야! 물리칠 데는 거기가 아니야!" 하고 말리고 ㅋ

길가에 앉아서 초코바를 먹고 있는데
"애들 여기 앉혀요." 하면서
은박깔개를 주고 간 사람도 있었다.

아이랑 같이 와서 힘든게 아니라
아이랑 같이 온 덕분에
혼자 와서는 불가능했을 마주침이, 연결이, 생겨났다.
따뜻한.

+


돌아와서 요놈들, 씻겨놓으니 바로 떡실신.
온유는 머리를 대자마자 코를 곤다 ㅋ
다섯살짜리가 너무 피곤해서 코를 다 곤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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