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본다. 웃을 때 입 옆에 보조개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보조개 대신 세줄짜리 세로 주름이 있다. 티끌한점 없이 빛나던 얼굴에 작은 빨간 점 검은 점도, 엷은 갈색 기미도 거뭇 거뭇 생겼다. 팽팽함을 잃어가는 거죽이 보인다. 드디어 눈에 띄게 나이를 먹고 있다. 그래도 예쁘다고 말해줄 사람이 있나 모르겠다. 얼굴이 나이를 먹는 만큼 지혜도 늘고 생각도 깊고 마음씀씀이도 포근해지고 있나 모르겠다.
요새는 나이만큼 세월이 같이 흐르고 있는 주변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이 참 좋다. 너무너무 예쁘다. 세월의 흔적이 같이 웃고,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모르는 열심히 살아온 시절을 만난다. 사람 얼굴을 보는게 참 좋다. 멀리 있는 친구들 얼굴도 보고 싶다. 기억 속에서는 너무 젋어서, 최근 얼굴로 다시 만나고 싶다. 에혀, 오늘은 얼굴 보고 싶은 사람이 많은 밤이로세.
우리 한결이 온유의 동글동글 애기 얼굴도 점점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겠지. 앞으로 그렇게 시간과 함께 가는 얼굴을 만날 것을 생각하니, 먹먹하다.
지금 만나는 얼굴들도 조금씩 조금씩 시간이 지나 10년이 지나고 문득 보면, 흔적이 훨씬 더 많이 남겠지. 그 때도 나는, 너무너무 예쁘다고 여길 것 같다. 시간을 함께 걷고 있어서, 너무너무 고마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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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은 이래놓고 정작 내 얼굴은 시간의 흔적을 기꺼히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긍정하지는 않는다. 생활 안에서 남몰래 열심히 노화에 저항한다.
자외선 차단제나 비비크림이나 뭘 바르기만 하면 뾰루지가 마구 나니까 못바르고, 대신 1초라도 햇볕 아래 나갈 때는 전투하러 나가듯 모자를 쓴다. 아침 저녁 천연비누로 거품 듬뿍 내서 세수하고, 뭘 바르는 것 자체가 답답하지만 스킨은 발라준다. 얼굴을 희고 촉촉하게 만든다는 저자극 천연 재료를 연구해서 이것 저것 섞어서 만든 수제 스킨이다.
기름진 고기랑 밀가루 음식이랑 가공식품은 일부러라도 피할텐데 현미잡곡밥에 나물반찬을 좋아해서 세끼를 오지게 쌀밥만 먹는다. 군것질도 잘 안한다. 보리언니가 "노민경은 밥순이지!" 한다. 안 좋은걸 먹으면 얼굴에 뭔가가 흩어 뿌린 들깨 싹처럼 뽁 뽁 돋아나고, 섬유질이 부족한 흰쌀밥이나 밀가루음식을 연이어서 먹으면 곧 화장실 갈 때 큰일 난다. 그런 예민함이 전혀 티나지 않고 편안하게 살고 있는 건, 토종 한국 입맛을 들여준 우리 엄마한테 고마워할 일이다. 어딜 가도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 문제가 없는 경지라 하겠다 :-D
허나 요새 그 건강 식생활에 위기가 닥쳤다. 보리언니 덕분에 집안일 마치고 쉬면서 카페라떼랑 아이스커피 만들어 먹는 맛, 사쁘나 덕분에 짜이 만들어 먹는 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과한 카페인은 정을 소모하고 피부의 탄력을 잃게 한다지만, 설탕 듬뿍 넣고 얼음 띄워서 먹으면 너무 맛있다 ㅠㅠ 달게 먹다가 가끔 바꿔서, 엄청 쓰고 찐한 커피를 마실 때도 참 좋다 ㅠㅠ
밤에도 되도록 1시 전에 자려고 애쓴다. 산책하고 일기 쓰느라 신이 나서 며칠 너무 늦게 자니까 다음날 얼굴에 생기가 사라져서 화들짝 놀랐다. 전날 밤에 내 양에 맞게 거친 음식을 먹고 잘 산책하고 푹 자고 일어났을 때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본 거울 속에서 뽀얗게 다시 살아난 얼굴빛을 만날 수 있다.
'좋아! 이뻐! 아직 괜찮은데! 잘하고 있어!'
나만 아는 내 얼굴의 아주 미세한 차이를 확인한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 앉혀놓고 얼굴빛 살피고 뺨 쓸어보듯이, 내 얼굴을 앞에 놓고 구석구석 살피고 매만진다. 예뻐해주자, 예쁘게 봐주자 내 얼굴. 예뻐해주자 내 생활. 오늘도 예쁘게 꾸려가자, 거울 앞에 서 있는 지금 나의 삶.
돌아서면 나이들어 있는 게 아니라, 자꾸 들여다보는 만큼만 천천히 나이들겠다. 순순히 받아들이고 순순히 늙지 않겠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