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3년 전에 온유가 태어난 중복이다. 날마다 비가 왔고 비가 또 올 예정이라 엄청 눅눅하고 엄청나게 끈적거리고 가만 있어도 땀이 흐른다. 몸으로 느끼는 불쾌지수가 올들어 최고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애들이 싸우고 소리지르고 던지고 뛰어내리고 난리가 났다.

 

 

"간다!" 

 

 

날다람쥐 날개 팔락팔락! 

 

 

"허으어어엇!"

 

 

날다람쥐가 땀에 젖어 땅으로 내려왔다.

 

발디딜 틈이 없이 어질러졌다. 감자양파 송송 썰어 먹을거리 만들어야 하는데, 칼자루 들 마음조차 생겨나지 않는다.

 

"가자 탑골 만화방에!"

탑골다방이 두시~여섯시에 열린다고 했다. 터보랑 포키도 틀림없이 올테지! 애들은 애들끼리 놀라고 하고, 나는 오랜만에 화섭언니랑 주영씨랑 두루두루 얼굴보고 맛있는 커피 마시고 얘기할 생각에 신이 났다.
 

 

 

이것이 어제 산 핫-팬츠. 너무 짧아서 길이를 살짝 가린 인증샷. 사실은 이 바지 입고 걸어다니고 싶어서 핑계를 모아모아 멀리 동네 밖에 나간 것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엄마지만 이런 여자사람.



+


12:10분 버스는, 준비 다 하고 나가서 온유가 젖은 양말 갈아신겠다고 울면서 바닥에 눕는 바람에 놓쳤다. 한결이가 내 대신 온유를 엄하게 나무란다. 말도 내가 하는 듯 내 대신이다;;

"이온유! 너때문에 버스 놓쳤잖아! 늑장부리면 되겠어 안되겠어! 이놈시키 맴매해야겠어! 또 그럴꺼야 안그럴꺼야!"

나는 온유때문에 차를 놓쳐서 속상하고 삐졌다. "엄마 우리 짜장라면 끓여먹자!" 한결이가 냄비에 물을 받아서 전기렌지에 올려놓는다.

짜짜로니 끓여 한대접씩 먹고는 3:40분 버스를 타러 아예 두시간 일찍 나갔다. 이평수퍼에서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선유네 가서 인사도 하고, 밤나무 타고 놀다가 여유롭게 버스를 탔다.

 

 

 

어린이들이 한여름 권태에 빠졌다. 하드 물고 질겅질겅.

 

 

온유 놀부. 한손엔 엄마꺼, 한손엔 자기꺼 들고 번갈아 둘 다 먹는다.

 

 

아빠차가 지나간다. "어~ 아빠다."

지나가던 아빠는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온 엄마를 보고 "우야노." 하고 안스러워하면서 한마디 툭 던지고, 다시 일하러 간다.

 

 

밤나무 타는 멍멍곰들

 

 

부이~


+

3:45분.
버스를 타자마자 아이들이 순해진다. 버스 안에서 내내 순하다. 이렇게 온유하고 한결같을수가! 시원하고 뽀송뽀송한 에어컨 덕분이다. 온유는 소로로 잠도 들었다.

 

 

조용하게 창밖을 내다보는 한결

 

 

 소로로 잠이 든 온유

 

 

아들램들과 한 화면에

 

 

"엄마! 우리 같이 사진 찍자!"

 

 

 

"엄마 내가 사진 찍어줄께! (찰칵) 엄마 예쁘게 나왔어! 아주 예뻐!"

 

 

주영소사님한테 전화했다. 탑골다방에 혼자 갔다가, 방금 나와서 집에 가는 길이라고 한다. 집에 놀러가도 되냐고 물어봤더니, 화섭언니한테 연락해보고는 대번에 오케이!


+

4:20분.
괴산읍 시외버스터미널 앞에 도착. 한참 잘자는 묵직한 온유를 안고 끙끙거리면서 내렸다.

"엄마 배고파! 찐빵 사먹자! 내가 맛있어서 세개나 먹은 그 찐빵 있잖아."
"그러자! 한결아 봐봐. 오백원짜리 열개야. 엄마는 온유 안고 있을테니까, 저기 찐빵가게에 가서 '찐빵 열개 주세요~' 하고 사와. 다녀와 ^^"

심부름도 척척 잘하는 진정한 일곱살 한결. 돼지저금통에서 꺼내온 오백원짜리 열개를 노란 고양이 지갑에 넣어줬다. 소중하게 들고 뛰어가서, 뜨끈뜨끈한 찐빵 봉지를 척 들고 온다. 찐빵 할머니가 얼마나 기특했을까 ^^

"한결아 잘했어 잘했어 >_< 고마워!
차복이네 집에 가져가서 다같이 먹자!"

 

 

 

 

찐빵봉지를 보물단지같이 들고 가는 한결.



+

읍내에서 차로 5분거리, 김차돌복이네 (김주영+차화섭+김차복+김차돌) 집에 도착!

블로그에서 보던 장면이 마당에 들어서면서부터 눈 앞에 펼쳐진다. 와, 똑같다. 사진 한장면 한장면, 어디서 바라본 장면인지 떠올라 끄덕끄덕 한다. 앞으로도 사진 보면 집이 떠오르겠다 :-D

구경구경. 애들 물놀이하기 좋은 수돗가도 보고, 나무 오두막도 보고, 뒷뜰에 쿠바식 무경운 텃밭도 보고 감탄했다. 여행 다녀와서 정글이 되었다던 마당은 토끼풀이랑 잔디랑 나란히 얌전하게 머리가 깎여 있다. 이거시 바로 잔디깎는 기계의 힘!!!!

집 안도 어찌나 상상초월 깨끗하고 정갈한지, 남자애 둘 키우느라 힘들다더니 이 집안 풍경이 너무해! 화섭언니는 나랑 같은 부류가 아니었어! 역시 손발 부지런하게 살림 잘하는 사람은 사주에 다 써있다는 걸 다시 한번 눈으로 보고 좌절했다. 잠자는 방은 스님방이고, 작업실은 사장님 사무실이고, 부엌도 거실도 콘도다! 꼭 필요한 것만 두고 다 제자리에 있다. 눈이 주체를 못하고 높아졌다. 나도 이렇게 정리를 해보고 싶다! 흐어-

애들은 왔다갔다 하면서 찐빵을 먹고 애들끼리 놀고, 어른들은 맥주 한캔했다. 천국이로다! 얼굴보니까 마냥 마냥 신나고 웃고 떠드느라 바빠서 사진을 못찍었다. 어떻게 한장도 못찍었지! 전혀 심심하지 않았던 거다! 대신 마음에다 집 풍경, 집에 있는 사람 풍경을 담아왔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살 궁리하기. 재미있으면서 진짜로 해봄직하고 먹고 살 수도 있는 길을 고민하고 만들어내는 부부의 이야기가 어찌나 재미난지, 감탄감탄했다.

여행하면서 벼룩시장에서 샀다는 지점토 장식도 선물받았다. 여러개 중에 하나 고르라고 보여줬는데, 보자마자 날치가 마음에 팍 들었다. 며칠 전에 벗님이 "주욱 날으라"고 응원해준 말이 동시에 퍼뜩 떠올랐다. "그쵸그쵸! 이거 이쁘지!!!!" 마음에 드는 것이 같이 통했다고 같이 좋아라 했다.

너무 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요! 가까이 두고 자주 들여다 보면서 파닥파닥 힘을 낼께요!!!! 지리산 야생꿀도 잘먹을께요 >_<

+

 

주영씨가 "롯데리아 앞에서 책들고 있는 뒷모습 보고 고등학생인 줄 알았어요! (바리톤)"

화섭언니가 "민경씨 다리 되-게 날씬하다아! (하이톤)"

 

오늘 이 말을 듣기 위해 길을 떠나온 지도 모른다!!!!!!

이 부부의 칭찬 하모니는 정말, 아... 이 은혜를 어떻게 갚지 ㅠ_ㅠ


+

6:15 분.
맥주 한캔이 몸에 사르르 퍼져 나른하고 어질어질해질 쯤, 짧고 굵은 만남을 아쉽게도 뒤로 하고, 언니네는 생거진천 친정집에 가고, 우리는 7:10 버스를 타러 읍내에 왔다. 버스 기다리면서 동인초등학교 놀이터에서 잠깐 신나게 놀고, 온유 생일 파티할 초코 케이크랑 빵도 샀다.

 

 

 

"엄마! 나 인제 혼자 일어서서 그네탈 수 있다!"

 

 

오리입을 하고 "오오오 잼있다!" 하는 온유. 

 

 

새카만 다리, 새카만 맨발 멍멍곰 형제.

엄마랑 시소만 타도 좋다고 헤헤헤 웃는다.

 


아주아주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운동장.

 날다람쥐같이 정글짐에 올라가는 아이들.


+

버스를 탔다. 역시 맨 뒷자리다. 메론빵이랑 복숭아 주스 한병씩 뚝딱 먹고나서 한결이부터 먼저 잠들었다. 온유도 꾸벅꾸벅 졸아서 눕혀주니까 그대로 잠들었다. 둘 다 침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곤하게 잔다. 

 

 

널브러진 좌온유 

 

 

엎드러진 우한결


애들은 도착해도 못일어날테다. 내가 둘 다 데리고 내릴 수가 없어서 남편한테 연락해서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만났다.

엄마가 들어 날라도 아빠가 들어 날라도 꿈쩍않고 눈을 감고 잔다. 남편 트럭에 태우고 집에 올라가서 그대로 들어다 이불 위에 눕혔다. 그대로 아침까지 푹 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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