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마치는 시간에 한결이 온유를 데리러 어그적 어그적 걸어갔다.

 

"엄마! 의사선생님이 흥분하면 안된다면서!"

"한결아, 흥분 아니고 무리야 ^^ 천천히 걸어와서 괜찮아."

 

+

 

수진언니가 꿈터까지 태워다줬다. 느그적 느그적 언덕을 올라 무사히 집에 왔다. 좀 있다 남편한테 전화가 왔다.

 

"순귀형님네 토마토 하우스에 미생물제재 치고 간다. 늦는다."

"아.... 그래."

 

애들이랑 밥먹고 책읽고 있다보니 남편이 예상보다 훨씬 일찍, 8시 20분에 왔다. 전같으면 늦는다고 전화같은거 안하는데 혹시 힘들까봐 신경 써준건가? 옷이 다 젖어서 들어왔다. 애 많이 썼네. 머슴버전 열무비빔국수를 만들어줬다. 싹싹 비웠다.

 

 

 

+

 

사흘차 가만히 "큰 대" 자로 오래 누워있었더니 조금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온 몸이 "걸어달라!"고 뒤틀릴 듯이 근질거려서, 산책 나가려고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꼬맨 혈관 터질까봐 겁도 없다.

 

"엄마 산책가? 너무 흥분하지 마~"

"한결아, 흥분 아니고 무리야 ^^ 고마워! 엄마 무리하지 말고 슬금슬금 다녀올께!"

 

+

 

어그적 어그적, 느그적 느그적, 슬금슬금, 평소의 1/5 속도로 뚝방길을 걷는다. 맘대로 걸어다닐 수 있는게 이렇게 좋을 수가 ㅠㅠ 걷는 길 내내 반딧불이 호르르 호르르 날아다닌다. 시골 여름밤의 낭만을 오늘도 이렇게 나 혼자 누리는구나!

 

걷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번개가 번쩍번쩍 친다. 비가 가끔 한방울 떨어지는 거의 마른하늘인데 너무 자주 번쩍인다. 사방은 논이고, 내가 지나가는 길에 큰 나무가 서너그루 있다.

 

'번개가 떨어지면, 나무 아니면 내가 맞겠는데?' 

 

떨어지는 번개를 맞을까봐 무서워졌다. 안되겠다. 오늘 산책은 여기까지. 뒤돌아 집으로 가면서, 발걸음으로 시간을 세봤다. 18걸음 걷고 번쩍. 42걸음 걷고 번쩍. 30걸음, 6걸음, 10걸음, 20걸음, 4걸음, 16걸음, 38걸음... 살다보니 번개가 이렇게 번쩍 번쩍 하는 밤에도 걸어보는구나. 흥분인지 무리인지 구별할 수 없는 오늘밤 산책길이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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