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서부터 집까지 걸어오는 길.

 

한결이는 꿈터에 아직 있을 둥둥이 형아랑 조금이라도 놀겠다고, 저 앞에 먼저 가고 있다. 온유는 내 뒤에 온다. 속상해서 입이 댓발 나와있다. 너무 뒤떨어져서 이미 한바탕 울고, 느적느적 마지못해서 따라온다. 솔바람네 집에 놀러가고 싶은데, 솔바람네 집에 손님이 온대서 못놀러가서다. 걷는 둥 마는 둥, 집에 가는 둥 마는 둥, 영 속도가 나질 않는다.

 

"엄마! 뭐라고 써있어?"

 

말없이 걷다가, 송면중학교 울타리에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면서 묻는다. 별모양 인형이랑 하트모양 인형이 책을 펴고 웃으면서 공부하고 있는 그림이다.

 

"응?;; 뭐라고 글씨는 안써있네? 공부하는 그림이다 ^^"

 

그리고 몇걸음 더 걷는다.

 

"엄마! 안아줘."

 

나는 어깨에 메고 있던 한결이 가방, 온유 가방, 내 가방을 다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온유를 꼬옥 안았다. 온유는 내 가슴에 얼른 손을 쑤욱 집어 넣는다. 10초동안 꼬오오옥 안았다.

 

"찌찌 만졌으니까 뽀뽀 한번."

 

뽀뽀 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는, 아들바보 엄마.

 

"쪽! 헤헤헤"

 

마주보고 둘 다 헤헤헤 웃었다. 우리는 얼굴만 봐도 행복한 바보가족.

그리고 나서 온유는 "한결이형아!" 하면서 꿈터로 다다닥 뛰어간다.

나는 바닥에 내려놓은 한결이 가방, 온유 가방, 내 가방을 다시 주섬주섬 메고, 따라간다.

 

엄마가 한번 안아주는게 뭐라고, 마음을 다 풀고 싱글싱글 웃나.

 

+

 

청소하면서 김영임의 정선 아리랑을 듣다가, 요 구절이 가슴을 퍽 치고 갔다.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유점사법당 뒤에 칠성단 돋우 놓고 팔자에도 없는 아들딸 낳아달라고 석달 열흘을 빌어..."

 

누구는 석달 열흘을 빌어도 애 낳기가 어려워서 눈물을 쏟는데. 나는 둘이나 있는 애들도 어렵고 힘들어서 쩔쩔 매고 있구나. 싶었다.

 

 

아직 애기인 온유랑 있으면 나는 그저, 있는 것 만으로도 대단한, 아주 필요한 존재다. 한번 안아주기만 해도 울음을 저절로 그치고, 어딘가 같은 공간에 있기만 해도 우쭐우쭐 의기양양해진다. 팔자대로라면, 나야말로 아들 딸이 없다. 팔자에도 없는, 아이와 함께 사는 삶을 선물해준 한결이랑 온유가 고맙다.

 

너무 힘들어도, 더이상 못버틸 것 같아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또 괜찮다. 사실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훅 훅 왔다갔다 한다. 그래도 시간을 지나오면서 아이들은 크고 있다. 움직이는 반경이 나한테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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