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집에 오니 일곱시였다.

넘 피곤해서 코트만 벗고 

숨돌린다고 잠깐 누웠는데

정신이 들고 보니 아침 여섯시다.


누운 자세 그대로 눈만 떠서

스타킹도 브라도 착용하고 있고

불도 다 켜있는 걸 알았을 때

밀려드는 소름.


몇 번 이러다 죽는 걸까 (개엄살)


+


너무 피곤하지 말아야겠다.


뭐 더 하려는 욕심내지 말고 밤에 제깍 자고

냉장고에 먹고 마실 것 잘 채워놓고

어디 나가면 집에 일찍 들어와서 쉬어야지.


회복 탄력성은 일상에서 온다.

이럴 때 소환하는 <아무튼 계속>.

일상의 항상성을 다잡으려

다시 책을 훑어본다.


+



일상의 항상성을 높이는 기술이 몇 가지 있다. 가능한 약속을 만들지 않고, 업무나 학업에 필요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으며, 요일별 해야 할 집안일들, 예컨대 날씨가 좋은 주중 저녁에는 햇빛 건조가 필요없는 수건을 빤다는 식의 루틴들을 매뉴얼화 하는 것이다. 모두, 평온한 일상을 위협하는 예외 상황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한 방법들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엄격한 통제만으로는 일상의 항상성을 유지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참고 견디면서 하는 다이어트가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무엇보다 자기가 만든 루틴을 지키는 데 스트레스가 쌓인다면 그건 평온한 일상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러니 이런 잔기술에 앞서 스스로를 항상성이 높은 체질로 바꿔야 한다.


살면서 정신력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겠지만, 대부분 그릇된 가르침이다. 정신과 육체는 분리할 수 있는 이원적 개념이 아니다. 무엇보다 거꾸로 됐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체력이 떨어지면 정신력은 십중팔구 흔들린다. 일상의 항상성도 마찬가지다. 규칙을 정하고 그것을 따르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는 일종의 집념은 오래 가지 못한다. 대신 외모부터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별반 다른 느낌이 들지 않도록 일상성을 갖추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봤을 때 어제 봤는지 며칠 전에 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도록 낮은 존재감을 체화해야하는 것이 항상성을 지속시키는 근원이라 할 수 있다. - p.33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모토로 사는 사람이라면 주변이 아니라 자기 자신부터 고요하게 해야 하는 법이다. 늘 똑같은, 변함없는 하루를 바란다면 닌자처럼 스스로를 감추고 드러내지 않을 줄 알아야 한다. 일상의 관성과 항상성은 별일없이 사는 잔잔함에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약한 존재감은 늘 변함없이 사는 일상의 궁극이라 할 수 있다. 장난스럽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닌자다움이야말로 항상성을 유지하는 필살 비기다. -p.36


- '닌자가 되고 싶었다' 중에서, <아무튼 계속>(김교석, 위고, 2017)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약한 존재감으로 ㅋㅋ

별일없이 잔잔하게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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