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
너 잘 안 보는 책 있으면 몇 권 줘 봐라.
가져가서 보게.
나 :
엄마, 난 요새 읽고 있는 책도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너무 많은데
읽어야 할 책이 계속 생겨.
그니까 뭘 가져가도 괜찮아.
엄마 읽고 싶은 걸로 골라서 가져가.
그래서 엄마가 고른 두 권이
<나의 아버지 박지원>, <다산의 마음>.
부천 시민대학에서 인문학 고전 강의 들을 때 사둔 거다.
수필 좋아하는 엄마가
재밌어할 만한 책도 추천했다.
<아무튼, 피트니스>, <일간 이슬아 수필집>.
엄마 :
사진은 왜 찍니! 책 안 떼 먹는다!
나 :
엄마 ㅋㅋㅋ
책은 안 줘도 되는데
책 읽은 얘기가 궁금해서 그래.
찍어놔야 그 책 어떠냐고 안 까먹고 물어보지.
읽고 어땠는지 얘기만 해줘.
엄마 근데, 나는 왜 정신만 차려보면 책을 들고 있지?
왜 그런 거야? 누구 닮은 거야?
엄마:
느이 아빠가 부산에 발령나서 같이 내려갔을 때
뱃속에 민경이가 있었는데,
그 때 친구도 하나 없고 이웃 사람도 없어서
아빠 출근하고 하루종일 책만 읽었거든.
근데 신기하지,
낳아놓으니까 뱃속에 있던 꼭 그대로더라야.
어디 가면 애가 깩 소리가 없어. 있는 줄도 몰라.
구석에 앉아서 책 읽느라고.
하루종일 읽어.
순했지, 너무 순했지.
일단 악기부터 연결.
아빠가 알미늄 호일 쪼가리 하나로
퓨즈 나간 앰프를 살려냈다.
아빠 :
딸래미, 아들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오랜만에 좀 들어볼까!
엄마 :
뭔 놈의 아들린느를 위한 발라드는
몇 십년째 아들린느를 위한 발라드야!
죽으나 사나 아들린느를 위한 발라드야!
(다 같이 큰 웃음)
하도 오래 전이라 기억이 안 나서;;;
다른 거 쳤다;;
악보도 다 버리고 없는데.
아직 해보지 않은 것, 한 번도 쳐보지 않은 것을
더 배우고 연습하고 싶었는데
얼마 전에 마음이 바뀌었다.
상명샘네 큰 아이가
발표회에서 연주한 것을 듣고 너무 좋았어서,
예전에 쳤던 걸
아주 쉬운 것부터 간신히 넘어간 것까지
다시 쳐보고 싶어졌다.
기숙사에 짐 가지러 간 사이에
엄마 아빠는 (나를 빼놓고) 다정하게 셀카 :-D
아빠는 엄마랑 사진찍으려고 셀카봉을 마련했다.
전국 방방곡곡 경치 좋은데를 다니면서
엄마랑 이렇게 사진찍는다 :-D
이삿짐 싹 밀어넣고
이것 저것 드륵 드륵 손보고
이제 강원도로 먼 길 떠나시기 전에
집 근처 트리플 스트리트에서 점심먹었다.
엄마가 선택한 메뉴는 꼬막비빔밥.
나 :
엄마, 꼬막도 애들한테는 난이도가 높은 음식이지.
내가 어른이 되고 난 다음에 꼬막을 먹을 줄 알게 되어서
엄마 아빠랑 오늘 어른의 음식을 같이 먹네.
속초에서 학교 다닐 때 엄마가 꼬막 해줬나?
먹어본 기억이 없어. 기억이 안나.
아마 꼬막 해줬어도 잘 안 먹었을 것 같아.
엄마 :
그렇지, 어릴 때는 잘 먹는 것만 해줬지.
안 먹는 건 잘 안했지.
나 :
회도 그랬어.
대학 들어가고 나서 먹었어.
엄마 :
그렇지, 기껏해야 오징어 회나 먹을 줄 알았지.
(같이 큰웃음)
이걸로는 약소해서 안 된다고,
다음 번에 부모님이 오시면
인천에 유명하다는 간장게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D
차츰 해가 진다.
혼자 노을 보는 첫 밤.
아빠는, 출발하고 나서 엄마랑만 있을 때 조금 우셨단다.
어른이 된지 훨씬 지나고 중년이 되었어도
자식은 자식인가부다,
걱정 하나도 안 되게 잘 살아야겠다, 했다.
앞으로 매일 보게 될 첫 어스름.
광역시의 밤.
세련된 도시여성의 허세짤,
(대충 오늘치 청소분량은 마쳤다 치고 일단 마시는)
야경 & 초코보드카.
20190217
@인천, 송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