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날이 좋다.

요 며칠 날씨 좋다고 얇게 입고 도서관에 오래 있었는데, 많이 추웠는지, 조금밖에 안떤 것 같은데 감기 기운이 들어왔다. 주말은 버텨야 하는데 큰일이다.

어린이 둘 아침 먹이고, 꿀차 타주고, 치즈스틱 구워주고, 오붓하게 책읽어준 것 뿐인데, 오전부터 기진맥진이다. 어제 다 치운 집은 다시 뒤죽박죽.

둘이 잘 노는 것 같아, 힘에 부치기도 해서 잠시 누워서 책을 읽자니, 한결이가 다급하게 소리친다.

"엄마! 지금 여유롭게 누워서 책이나 읽고 있을 때가 아니야! 온유가 온 사방에 낙서를 하고 있어!"

그 잠시 눈을 뗀 동안, 굵은 유성 매직으로 바닥에 동글동글 회오리치는 작품을 그려놨다.
그나마 바닥이라 다행이다. 비누칠하면 된다. 책 속이나 벽지 위에다 안해서 고맙다.

+

잠시 후에는 한결이가
"엄마 온유가 나 발로 차서 코피가 났어. 피가 많이 나고 있네." 한다.

피 많이 난다 ㅠㅠ 아이고..

"온유야! 형아 발로 차면 안돼!
형아 미안해~ 아팠지 해야지!"

"헝아 미안해~ 아팠지~" 하고 1초 후에
"허어잇! 피땨이(필살)!"
바로 무술인으로 돌아간다.

+

머털도사와 108요괴를 틀어주고
나는 누웠다 ㅠㅠ
점심밥이랑 오후는 어쩌지 ㅠㅠ
차복이네 놀러온댔는데 어케 치우지 ㅠㅠ

+

결혼해서 사는 것과 애를 키우면서 사는 건 정말, 그 자체로 열심히 사는 거다.
이렇게 에너지를 바닥까지 다 쏟아부으며 열심히 살아 본 적이 없다. 이렇게 하나도 마음대로 안되는 상황을 오래오래 외롭게 참아내며 살아본 적이 없다. 대견하다. 이젠 누구와도 있는 모습 그대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너무 쉽게 살아온건가?

애들은 이쁘다. 나는 애들한테도 남편한테도 무척 사랑받고 있는 걸, 안다. 하지만 늘, 당장 눈 앞에 보이는 해야할 일과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데 신경이 곤두서있는 상황속에서 산다. 이런 것이 하루이틀도 아니고 매일매일의 삶일 줄이야. 너무 몰랐다. 몸은 여기 매이고, 그저 머리속으로만 헤맨다. 다른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것 같고, 평범하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면서 평생 별 탈 없이 사는 것 같다. 나는 어디가 잘못 되었나. 괜찮지 않아. 잘 지내지 못해. 잘 못살아요. 애들은 이렇게 예쁜데.

달라진 것 같은데 그리 달라지지 않은 하루가, 달라진 것 같은데 여전히 이 생활이 너무너무 힘들고 벗어나고 싶어서 우는 내가, 안스럽다. 가족한테 미안하고.

그러니
여태까지 그랬던 것 처럼, 배운대로,
청소하고, 밥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을 하고, 친구를 만나야겠다.
그럼 거기서 또 뭔가 다른 길이 보이겠지.
살아가겠다! 홧팅.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이앤트메리  (2) 2015.03.22
연결  (0) 2015.03.21
초백수 책읽기모임 시작  (2) 2015.03.20
가보자 가보자  (0) 2015.03.20
어디가 이쁘나  (0) 2015.03.1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