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 밀려왔다. 바닥을 쳤다. 늘 피곤한 상태로 아슬아슬하게 견뎌왔는데, 요새 몸도 마음도 한꺼번에 쓰는 일이 연속이었고, 방전된 틈을 타서 병이 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왼쪽 머리가 띵 하고, 목 바로 윗쪽 뒷머리가 쑤시고, 움직일 때마다 골이 유리컵에 담은 과일젤리처럼 흔들흔들 한다;; 눈 안구가 얼굴 뼈 안으로 들어가는 곳이 욱신욱신 쑤신다. 아침에 먹은 밥이 오후 세시가 되어도 내려갈 기미가 안보이고, 왼쪽 횡경막 위쪽이 부딪혀서 멍든 것 처럼 아프다. 무릎 뒤 오금이 쑤신다. 팔꿈치를 접으면 시큰하고,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뭔가 들어올릴 힘이 없다. 몸에 기운이 없어서 오전부터 아무 것도 못하고 누워 있다.

분하다. 이럴 때 내 몸에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병이 덮칠 정도로 잘 못살았는지, 모르겠다. ​'빨리 손에 잡힌 걸 다 놓고 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책 한자 못 읽고 지나가는 이 조용한 시간이 너무 아까워 안타까워하면서 잠으로 잠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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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자고 일어나도 상태는 별로 나아지지 않고 머리가 더 무겁다. 가만 있어도 곧 죽을 것 같아서, 일단 열개들이 침 한봉지를 깠다. 잡히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침뜸 기초반에서 배웠던 혈자리에다가 꽂았다. 태충, 합곡, 족삼리, 삼음교, 내정, 태연, 곡지 등등.

'일단 꽂으면 몸이 알아서 기혈순환의 균형을 맞춰가겠지.'

마침 옆에 시성쌤한테 선물받은 혈자리서당 책이 있다 ㅠㅠ 뒤에 "증상별 혈자리 찾아보기" 목차를 뒤져보고 감기에 쓰는 양릉천이랑 해계, 두통에 쓰는 곤륜 혈자리를 찾아서 더 꽂았다.

20분쯤 지나니까, 죽을 것 같은 지경에서 조금 벗어났다. ㅠ_ㅠ 속에 있는 덩어리가 명치 아래로 스르륵 내려갔다. 엄청 뜨거운 오줌이 나왔다. 눈에서 숯불이 이글거리는 것 같은 뜨거움이 조금 가라앉았다. 곧 배고파져서 밥도 먹었다.

 

침을 꽂으면 어떻게든 나아진다는 확신을 갖게 된 예전 침뜸 공부도, 이럴 때 딱 맞게 참고할 수 있는 책을 선물해준 새로운 만남도, 어느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넘길 수 있게 해준 귀한 인연이다. 감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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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봇물터지듯 아플거라고는 생각도 못하지...는 않았다.

 

돌아보니, 사실 엊그제 화요일부터 기미가 있었다. 메주를 만들 때 벌써 온 몸의 근육이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는 걸 느껴가면서 간신히 하루를 마쳤다. 집에 다섯시반에 오자마자 쓰러지듯 잠이 들었더랬다.

 

그리고 수요일. 몸이 계속 쉬라고 신호를 보냈다. 하루종일 머리가 띵하고 눈도 뜨겁고 팔꿈치가 시큰거리고 팔에 힘이 안들어가고 온 몸에 힘이 없었다. 그 신호를 알아채고 낮에 얼른 공장에 연락해서 "목요일에 일 못하겠어요. 팔꿈치랑 어깨가 아파요. 힘을 서툴게 써서 그런가봐요. 쉬고 다음에 할께요." 했다. 하지만 하루 일정이 꽉 차있다. 사주명리학 강의도 듣고, 괴산도서관에 가서 순회문고 교환하고, 한살림에서 쌍화탕 하나 사서 마시고, 솔뫼농장 월례회의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뻗었다.

 

그리고 목요일. 이렇게 누워있다. 앓을 시간을 미리 예상하고 하루 쉬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뒤늦게 돌아보니 그보다 한걸음 더 갈 수 있었다. 내일부터 아플거라는 신호를 감지한 화요일 밤에 예방조치를 할 수 있었다. 

 

평소에 그렇다. 병이 온 몸에 확 번지기 전에 미리 몸을 돌보는 조치를 그닥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열심히 하지 않는다. "난 괜찮아. 괜찮아. 웬만한 몸살기는 잘자고 나면 넘어가." 하다가, 진짜로 병이 오면 그제서야 드러누워 끙끙앓고 뭘 마시고 뭘 먹고 한다. 오늘도 그 장면을 되풀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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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제 도담쌤이 얘기해주신 것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나는 신약해서 체력이 관건이다. 타고나기를 몸 쓰는 기운이 별로 없으니 일할 때 몸과 마음을 너무 쏟아붓지 말고 (뜨끔) 몸 아껴아껴가면서 일하고, 산책도 계속 하고, 몸에 대한 공부도 하면 좋겠다고. 글쓰기도 공부도 엄청 체력을 많이 쓰는 일이라고.

 

누워서 어제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본다. 평소에 내가 나를 대하는 모습을 들여다본다. 들을 때는 "그렇구나~" 했는데, 진짜 아프니까 "아아아 그렇구나!!!!!! ㅠ_ㅠ" 한다. 바로 어제 들은 얘기를 이렇게 절실하게 받아들이는 몸이 되었구나. 그러고 보니 이 타이밍에 이렇게 아픈 것도 엄청 고마운 일이다. 배운 것을 잊어버리기 전에, 때를 놓치지 않고 내 몸에 적용해볼 수 있어서 이 아픔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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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성이 많은데, 공부를 하지 않으면 몸이 아플 사주라고, 결국에는 공부를 하면서 살게 되어 있다고. 그 말이 무척 기뻤다.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아야 안아픈 내 운명이 너무 사랑스럽다 :-D 그런데 이렇게 몸에 기운이 약해서 감당할 수가 없다면, 그 좋아하는 공부속에 푹 잠겨들어가보지도 못하고 동동 떠밀려날 것이 아닌가.

 

연암 박지원, 공자, 사마천, 왕양명, 이 체력좋은 공부쟁이 분들 이야기를 들은 것이 또 다른 한편에서 뭉게뭉게 생각난다. 체력이다. "타고 나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으면, 아끼고 만들어가면 된다!"는 것이 사주명리학을 배우면서 얻은 삶의 지혜다. 또 혹시 내가 몸을 약하게 하는 하찮은 습관을 일상에서 반복하고 있지는 않나 살펴보기도 해야겠다.

 

아프면 속수무책이다. 원하는 삶을 살려면, 자립하는 삶을 살려면, 아파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짐이 되지 않으려면, 내 몸 돌보는 공부와 내 몸 돌보는 습관 만들기가 가장 먼저가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지? 뭘 어디서 어떻게 시작하면 되지? 오늘이 지나고 아픈 것이 사라져도, 이 물음은 잊어버리지 말자. 일단 일찍 자고 밥 잘먹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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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기 세줄 요약 :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는게 너무너무 분해.

다시는 이 지경으로 아프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기록해 놓는다 -_-+

몸공부를 하자. 어떻게 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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