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작가님 소설 <이만큼 가까이>에서
여주 남주가 ‘개는 손으로 기억한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고는
키우던 멍멍이의 털 감촉을 기억하는 손이 내 손인 것처럼
복슬복슬한 느낌이 그리워져버렸다.

이 부분 떠올리면 지금도 먹먹하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여느날 같던 날에 나눈 사소한 이야기.
그 순간을 다 기억하고 있는데
이제는 기억을 재생하는 것으로만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내가 잊으면
그 순간의 그와, 우리와, 우리의 이야기가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버리는.

그런 순간이다.


내 머리라도 파마해서 만져야겠다고 맘먹었다.


+

이번 설에 속초행.

“엄마 나 파마 할까?
웨이브 이런거 말고 그냥 엄마처럼
머리 처음부터 끝까지 곱슬곱슬하게.”

“그래! 너도 인제 빠마 좀 하고 다녀라.
얼마나 이뻐! 지금 가자!”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엄마의 단골미용실 의자로 순간이동 :-D

“빠글빠글 볶아주세요.”

빠글빠글 볶다니, 엄마의 표현에 감탄했다.
이보다 정확할 수 없다! 마치 통역!
구체적이고 명확하고 간결한 전문용어로
딸의 요구사항을 원장님한테 완벽하게 전해줬다.


+

아주 앞머리까지 하나도 안 빼놓고
빠글빠글 롯트를 감았다.
두근두근.

중간중간 풀러 상태를 체크했는데
자꾸 도로 감아놓으셔서 어... 했다.
결국 세 시간 후에나 풀 수 있었다.

머리를 감자마자
복슬복슬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어 보였다.

어쩌나.


+

파마기 1도 없는 생머리라서 너무 튼튼했나부다,
생머리에 처음 하는 롯트로는 굵었을까 더 얇은 걸로 할 걸,
대략 원인을 분석했다.


어쩌나.


모양이 어떻게 나왔든 신난 건 충분했다.
파마를 시도한 것 자체가 설렜고
엄마 단골미용실에 엄마랑 처음 같이 온 것도 좋았다.

뭘 어떻게 더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너무 졸아서 목부터 등까지 뻐근하고
날 밝을 때 와서 밤이 되었고 지치고 배고팠다 ㅠ

우리 다 같이 세시간 애썼지,
이만하면 됐다, 하고 나왔다.


+

결과, 두둥 :-D
복슬복슬펌 갓 일주일 차.
(하기 전이랑 별 차이 없;;;)



요 아래 사진은 붕붕샘이 춘천 책방마실에서 찍어줌.
고마와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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