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뭘 어떻게 해서 괜찮아졌더라.
+
걷는 것.
걸으면 눈 앞의 풍경이 자꾸 달라지고 새로워졌다.
하루 하루 걸을 때마다 반드시 가벼워졌다.
어제의 나는 그대로 두고 오늘의 내가 되기를 했다.
걷다보면 지난 생각은 밤톨만했다가 콩알만해졌다가 깨알만해졌고,
그저 홀가분하게 길을 걷고 있었다.
+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
아파 죽어가면서도 늘 따뜻하게 웃어주고
정확히 칭찬해주고 달달한 유혹과 농담을 던지던 사람,
유일하고 전부인 대니를
이지는 결혼식날 영영 잃었다.
대니가 언젠가 죽는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닥쳐온 현실에 충격을 받은 이지는
드레스를 입은 채 바닥에 그냥 누워버렸고,
그걸 보면서 나도 바닥에 붙은 이지의 마음이 되었고,
일어날 수 있었다.
+
황정은 소설.
(제목이 기억 안나;;)
세상에 기댈 곳이 서로 밖에 없던 사람의 죽음을 맞고
화장하고 재 단지를 안고 돌아오는 주인공이 되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끝났을 때
내 마음의 장례의식을 치루고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
편지쓰기.
부치지 못하고 부칠 맘도 없어
내가 쓰고 나만 읽는 편지지만,
쓰는 나와 읽는 나는 달랐고,
다 읽고 난 나는 처음에 쓴 나와는
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할 말이 더 없을 때까지 탈탈 털어서 쓰고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는 것처럼 읽다보면
어느 순간 ‘아니 그걸 뭘 그렇게까지’ 하면서
가벼워져 있었다.
+
헤어짐은 늘 지옥불 같았지만
마음이 어쨌든 어떤 상황이든 밥은 맛있게 잘 먹었다.
상실감. 단절감.
지옥불같은 고통은 너무 강렬해서, 그 힘으로
한 번도 되어보지 못했지만 원래 나였던 것 같은 내가 될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보니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사랑하던 시간이나 연인보다 한번의 강렬한 헤어짐이
결과적으로는 내 인생에 강렬하게 이로웠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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