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장명루

솜사탕 연필 2015. 5. 31. 16:32

청황적백흑, 오방색 실로 만드는 팔찌 장명루(長命縷​)를 만들었다. 온 사방에서 밀려드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고, 건강하게 오래 살라는 의미가 있단다. 주로 단오때 만들어 선물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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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색의 배합이 촌스러워보였는데. 내가 만든 거고, 내 팔자를 원활하게 순환시키는 기운을 받으니 도움이 되겠네 싶고, 자꾸 보니까, 안촌스럽고 예쁘다. 자꾸 보면 정드는 것처럼, 미의 경계를 흐리는 팔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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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괴산에서 열린 한살림 단오제 행사에, 솔뫼농장 여성회원이 소비자랑 같이 장명루 만들기 체험부스를 열었다. 고 때 만든 거다. 장명루는 여성부장 일경형님이 낸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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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제 전날. 농장에서 형님들이랑 음식 만들고 나서 같이 배웠다. 부스에서 찾아온 사람들한테 만들기를 알려주어야 하니 눈 부릅뜨고 배우고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손으로 만들어봤다. 나는 잘한다고 폭풍칭찬 받았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화끈. 부끄럽다. 농사일 하느라 거칠고 손마디가 굵어지고 잘 구부러지지도 않는 언니 손에 비해, 내 손은 너무 얄쌍하고 희고 곱고 잘 구부러지고 요리조리 재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거기에 손을 내밀고 칭찬 들을 자격이 안되는 사람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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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가르치려니 어쩔 줄 몰라, 처음엔 "저 못하겠어요 ㅠㅠ" 하고 쩔쩔맸다. 그러다 제대로 땋지도 못하면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줄을 조심스럽게 헝클어뜨리는 꼬맹이를 봤다. 만들러 온 사람은 엄청 많았고, 가르쳐주는 사람은 무척 모자라서, 혼자 애쓰고 있었다. 꼬맹이 옆에 가만히 서서 보고있다가, 같이 천천히 해봤다. 그러면서 마음이 점점 편해졌다. "몇살이야? 금방 따라하네. 잘한다~" "일곱살."

그 다음 한번 한번 알려주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막 좔좔좔. 나중에 팔찌 끝마무리는 나한테 다 맡기는 분위기.

한번 만들어본 사람은 쉬워서 금방 다른 사람을 가르쳐줬다. 한봄이 주원이도 선생님이 되었다.

오늘 제일 뿌듯했던 건 경기형님한테 매듭법을 알려드린 것이다. 형님은 "아하~ 그렇구나. 알겠다!"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틀리지 않기 시작했다. 사부작 사부작 일 많이하는 손가락. 숨은 삶과 숨은 마음씨가 고운 손가락. 색이 고운 실 사이를 마음씨 고운 경기형님 손가락이 노니는 장면이 오늘의 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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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법. 다섯가지 색을 각각 고리로 만들어 손가락에 3개 2개 나눠 끼고, 실을 끼우지 않은 검지 손가락 하나를 코바늘처럼 쓴다. 세개 있는 쪽의 맨 바깥 실을 검지에 잡아걸고, 또 자리를 바꾸어 세개가 된 쪽의 맨 바깥 실을 빈 검지로 잡아거는 걸 되풀이한다. 단추 달고 마무리.

땋는법. 3줄 2줄로 나누어 잡고, 3줄의 맨 바깥줄을 2줄의 안쪽에다 넣고, 다시 3줄이 된 쪽의 맨 바깥줄을 2줄의 안쪽에 넣으면서, 머리카락처럼 땋는 것처럼 죽 땋아내린다.

매듭법은 두줄을 겹쳐서 하는 거라 금방 다 만들고 도톰하고 탄력이 있다. 땋는법은 세줄땋기밖에 몰랐는데 이젠 일곱줄도 아홉줄도 열한줄도 땋을 수 있을 것 같다. 써먹을 데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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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한번 입을 떼기가 그렇게 그렇게 어려웠다. 한번 해보고 나니 여유가 생겼다. 딱 한발 떼보면 걸어가질 것이니- 홧팅 홧팅.

누군가에게 만들어서 선물도 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또 가르쳐 주고 싶다. 없던 손기술이 하나 생겨서 무척 기쁘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