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마음 달래는 달래

솜사탕 연필 2015. 4. 21. 22:18

4월 17일 금요일 밤 11시 반. 어머니댁에서 걸려온 한결이 전화를 받았다. 나는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서울에 와 있고.

"아까 아빠가 할머니집에서 자라고 했는데, 집에 가서 자고 싶어. 아빠가 전화해도 안받는다. 온유도 안자."
"그랬구나.. 엄마가 일찍 갈게. 할머니 집에서 자."
"엄마 메론 세개 사와! 떡볶이 과자랑 햄버거 스테이크도."
"엄마~ 온유야. 사과 사와~ 안녕!"

안되겠다 싶어 마음을 접고, 다음날 새벽에 바로 내려왔다. 원래는 시청광장 세월호 집회에 갔다가 괴산사람들이랑 같이 내려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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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 토요일.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한결이가 주문한 메론이랑 떡볶이 과자, 온유가 주문한 사과, 크림빵을 사가지고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딱 내리자마자 남편의 차가 보인다. 아빠차에서 환하게 웃으면서 내리는 아이들! 방금 할머니 집에서 왔단다. 계주 주자같은 바통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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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란이가 한결이 보고싶대서 우리집에서 두시에 만나기로 했다. 피곤이 몰려와서 잠시 누운 10분 사이. 한결이가 메론을 꺼내고, 칼로 반을 자르고, 온유는 메론 반쪽을 주물럭거려 온 거실 바닥에다 처덕처덕- 메론즙 스케이트장으로 만들어놨다. 둘이서 힘을 합해 할 수 있는 저지레는 가히 재앙급이다.

'눈을 떼면 사고인데.
감히 누웠구나. ㅠㅠ '

약속 장소를 솔멩이 도서관으로 급히 바꿨다.
집에 있어봤자, 지금 내 상태로는 애들 어지르는 속도를 10%도 따라잡지 못한다. 호통쳐서 온유를 울리고, 우느라 가만 있을 때 잽싸게 파바팍 닦았다. 크림빵이랑 사과 들고 도서관으로 출발. 안사왔으면 오후 내내 쫄쫄 굶을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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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이랑 아란이는 논둑을 뛰어다니며 참 잘논다. 잠을 푹 못잔 온유는 작은 일에도 슬퍼하면서 "같이 놀아줘~ 같이 놀아줘~" 하고 누나 형아를 쫓아다닌다.

나는 배고픔을 달래고 피곤을 달래고 복잡한 마음도 달래느라, 도닦는 마음으로 근처에 난 달래를 캤다. 부추도 뜯고, 냉이도 캤다.


올해 처음 뜯었다.
부추전이 딱이라고, 향기로 부추기는 부추.


마음을 달래는 달래.


아이들을 모시자! 모싯대 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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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잠을 못자고 낮잠도 못잔 온유는, 격렬하게 잠투정하고 장렬하게 쓰러졌다. 오후 다섯시다. 이때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잔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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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이가 배고프다고 노래노래 한다. 집에 가서 잠든 온유를 눕히고 얼른 부추전을 부쳤다. 밀가루는 적게, 부추는 왕창 많이, 무쇠 후라이팬에다가 바삭하게 부친다 >_<bbb


여섯장 부쳐가면서 서서 혼자 세장을 홀라당 먹었다. 첫부추다. 나만 기혈을 보하고 정력이 세지겠구나. 나라도 힘껏 세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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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이는 전 부치는 동안 밖에서 소금쟁이 한마리를 잡아왔다. 냉면 그릇에다 흙탕물을 붓고 소금쟁이를 띄우고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키우고 싶어! 소금쟁이는 뭘 먹고 살아 엄마?"
'엄마도 잘 모른다..'

이 때 온유가 선잠 깼는지 칭얼칭얼. 밥상은 다 차려놨다.

"한결아 부추전 해서 밥먹어~ 엄마 온유 달래고 올께."

방에 들어가 온유 옆에 살그머니 누워 가슴을 토닥이면서, 잠시 눈을 감았다 떴더니 다음날 아침이다. 입은 옷 고대로, 누운 자세 고대로, 이불도 안덮고 있다. 기절했네. 토요일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