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괴산에 내려갈 때는 얼굴에 병색이 난다는 말 대신 (너무 많이 들으니까 진짠가 싶어서 무섭다 ㅠㅠ) "예뻐졌다!" 소리를 들어야겠다. 이미 조금씩 해보고 있지만 더 독하게 작정을 하고 더 독하게 양생하겠다! 동의보감 특강 들었으니 까먹지 말고 바로 실습이다! >_<

잘 시간 되면 손에 잡은거 다 놓고 자고, 병원에 가고, 요번에 두꺼운 옷 챙겨왔으니까 아직 좀 추워도 산책 시작하고, 얼굴에 입술에 잘 바르고, 사물탕 끓여 마시고, 요가도 하고, 꼭꼭 잘씹어서 제 때 밥먹고, 일기 쓰고, 혼자 있으면 웃을 일도 말할 일도 별로 없지만 풀죽지 말고 작은 일에 감사하는 하루씩 보내야지.

다음주 월요일 문헌정보학 개강 알림 문자도 왔다. 글쓰기 공작소 수업도 벌써 시작했고, 관문학당 명리학 심화과정도 내일부터 시작이다. 부디 이 일상에 적응해서 잘 배우고 잘 받아들이는 튼튼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배우는 만큼 새롭게 변하고 성장하길.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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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보존에 대해서.


책에 흔적이 남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흔적없이 보고 흔적없이 보관한다. 다른 건 몰라도 책을 빌려주는 건, 마음을 크게 내주는 것이다.

+

낭송 장자책을 남편이 읽겠다고 가져갔는데, 차 안에 두고 이리저리 굴려서 짐 속에 파묻혀 있는 걸 몇달만에 찾았다. 겉은 시커먼 흙먼지 투성이에 안쪽으로 습기가 들어가서 표지부터 1/3 정도는 우글우글해졌다. 모양이 다 망가져 온걸 보고 온 몸에 맥이 탁 풀렸다. "이건 자기가 가지고, 내꺼는 새로 하나 사 내라!" 하고 홱 돌아섰지만, 사실은 이렇게 될 줄 빌려주면서부터 알았다. 이 사람의 차는 블랙홀이다. 들어가면 사라진다. 이 사람의 의식에서도 차 안에서도 증발한다. 혹시 발견되더라도 3만년 후에 모양이 뒤틀려서 나온다. 그래도 읽겠다는게 기특해서 속는 셈 치고 내준 거고, 알고도 내준 내 잘못이다. 말만 그러고 말았다. 이렇게 뒤틀려서라도 돌아온게 어디야. 남편은 내가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큰 마음으로 내 소중한 책을 빌려줬는지 평생 모를거다. 몰라도 된다. 이제 빌려줄 일도 없다.

+

교과서가 아닌 이상 책에다 밑줄 긋거나 표시하지 않는다. 책에 없던 것이 생기는 것이 '티'로 여겨져서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내용이 흘러가면서 소용돌이의 정점이 되는 중요한 부분은 다른데 옮겨 써놓거나 눈으로 기억하지, 책 자체에다 표시하지는 않는다. 표시하면 다음에 볼 때 그 부분이 먼저 눈에 들어와서, 소용돌이의 정점으로 다시 빨려드는 즐거움이 약해진다.

하지만 목적이 다른, 외워야 하는 책은 예외다. 있는 힘껏 색색깔 밑줄긋고 표를 그리고 그림을 그려서 한눈에 그 부분의 내용이 들어오게 압축압축 결론결론 한다.

책이 잘 펴지라고 손바닥으로 책장을 다리미질 하는 것도 절대 내게는 없는 일이다. 그저 살그머니 마지막 책장까지 본 듯 안본 듯 한장 한장을 조심히 넘겨서 본다.

+

도서관 일에 마음이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는, 몇몇 이용자가 책을 (내 눈으로 보기에) 너무 험하게 다루는 거였다. 책장 다리미질도 책표지까지 주름지도록 세게 하고, 읽은 곳을 표시하면서 책장을 접거나 책표지를 넣어서 책의 모양이 변하기도 했다. 제 때 돌아오지 않고, 그림책 등이 흐물흐물해지고, 뭔가가 안팎에 묻었다. 책을 험하게 읽는다고 책을 잘 읽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보는 것만 해도 속상해서 가슴에서 화살이 돋아났다. 누구를 쏘던가, 내가 맞던가. 그러다 생각을 바꿨다. 내 책은 내가 어쩔 수 있지만 도서관 책은 다 같이 아끼는 거다. "아무도 안봐서 새것인 채로 낡아가는 것 보다는, 사람 손을 많이 타는 것이 책한테도 도서관한테도 훨씬 좋은 일이다!" 하고 마음을 바꾸니, 거기에 갇혀있지 않게 되었다. 책을 좋아해서 아낄 수 있도록 한사람 한사람이 책이 더욱 더욱 좋아지는 계기를 다양하게 만들고, 그래서 책이 더욱 더욱 손을 잘 타도록 하는게 내 일이겠구나, 했다. 책 험하게 보는 장면을 만나면 바로 그자리에서 "그러면 안된다"고 (속으로 무척 어려워하면서) 얘기도 했다.

책이 비명횡사하지 않고 천천히 잘 죽어가는 것이 책이 잘 사는 길이라는 아니러니를 본다. 책도 잘 죽는게 잘 사는 것이다.

+

내 책도 그렇겠다. 새것으로 와서 새것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한번 펴보지 않고 십년이 지나는 책도 많다) 내 손을 잘타서 잘 숨을 거두는 것이 책한테도 나한테도 좋은 것이겠다. 빌려주고 얘기가 풍성해져서 돌아오는 것도 좋겠다. 그래서 과천에 오면서는 작정하고 안펴본 어려운 책들을 데리고 왔다. 덜덜떨면서 용기내서 밑줄도 그어볼까 한다. 내 스승님들이 공부책이 스승님을 만나서 온 몸에 흔적을 입고 스승님의 문장이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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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이렇게 밥먹고 공부만 할 수 있는 시절이 또 오겠어? 이 때가 지나면 먹고사느라 일하는 삶이 시작이야. 일하고 오면 지쳐서 잠이 몰려오는데, 공부 하겠어? 고시공부한다 생각하고, 사람도 만나지 말고, 원없이 실컷 공부해. 사람을 만나면 감정이 생기니까. 일상 리듬이 흐트러지면 집중하기 힘들어. 밥먹고 잠자는 시간을 맞춰서 생활을 규칙적으로 하고.


- 괴산에서 과천 이사오던날.
보리언니, 차광주 선생님이랑 점심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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