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샘이 월요일마다 장애인 노들야학에서 하는 인문학 강의를 마치고 나서, 병권샘이랑 박카스샘이랑 수업 따라간 나랑, 노들야학에서 일하는 미영샘 이렇게 넷이서 저녁을 먹었다.

혜화에서 제일 눈에 띄지 않은 곳에 일부러 숨어있는 것 같은 아주아주 작은 '잣골' 식당을, 골목골목 돌아서 꼬불꼬불 길로 찾아갔다. 가난한 연극인들이 잘 가는 식당이라고 한다.

식탁도 아주 작아서 넷이 다닥다닥 정겹게 붙어 앉았다. 황태해장국 셋에 선지국 하나, 소주 한병을 시키고 폭풍 수다 ^^

"민경샘 오늘 어땠어요?"
"어... 시끌시끌 했어요. 활기찼어요! +_+ 그리고 병권샘이 질문할 때, 다들 답에다가 농담을 한마디씩 더 붙이더라구요. 그래서 다같이 와락 웃고 와락 웃고. 그게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제가 어디 가면 이뻐서 막 주목받는 편인데 (샘들 피식 웃음) 오늘 야학 온 분들이 절 별로 안쳐다보더라구요. 원래 같이 있던 것 처럼 마음 편했어요."

휠체어를 탄 사람도, 침대에 누운 사람도, 목발 짚은 사람도 많다. 와글와글 많은데 한사람 더 온 것이 뭐 그리 대수롭겠나. 처음 온 나도 그 틈에 스며들 수 있어서, 받아주어서, 고마웠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듣기만 하는 강의가 아니었다. 병권샘은 대답하기 만만한 질문을 지루할 틈이 없이 계속 던진다. 다들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하고, 농담도 하고, 속에 있는 생각도 탁 털어놓는다. 몸이 조금 불편할 뿐,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하고 북돋우는 자리였다.

'이런 자리가 사람의 마음을 살리겠구나.
나라도 수업에 빠지고 싶지 않겠다.'
감히 감탄했다.

소주 한병 시키고 셋이 먹으면, 소주 두세잔에 알딸해지는 요 정도가 딱 좋다는 병권샘.
나도 옆에서 막 넘좋다고 넘좋다고 설레발 ^^

옛날에 수유너머가 혜화에 있었을 때, 술국 하나에 소주하나 시키면 6천원이었는데, 가난한 연구원 셋이 먹기 딱이었다고. 맨날 그렇게 셋이 가서 육천원어치만 먹으니까 식당 아주머니가 "징하다!" 했단다 ㅋ

미영샘은 다시 노들야학에 들어가고, 샘들이랑 수유너머R 연구실로 돌아오는 길에 남대문시장에서 한개 천원하는 꿀호떡도 냠냠 먹었다.

유리상이 호떡을 좋아한단다. (유리상은 일본에서 유학와서 연구실에서 같이 공부하고 있다. 솔멩이골 작은도서관에도 박카스샘이 스피노자 강의할 때에 같이 왔었다.) 야학에 같이 갔다가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늘 사먹는다는 꿀호떡. 한번은 안먹고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사실 무척 먹고 싶었던가보다. 참다 참다 찻길 건너서 버스타기 직전에 "저, 호떡...." 하고 이야기했다고. ^^ 오던 길 도로 돌아가서 사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먹으니 더 맛있었다.


그런 이야기가 너무 재미나고, 같이 밥먹고 얘기한 시간을 잊고싶지 않아서, 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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