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애선이한테 전화가 왔다. 아기 낳을 때가 되었는데, 집에서 아기 낳은 내 얘기를 좀 듣고 싶어서, 겸사겸사 전화했다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오랜만에 안부를 묻고 반가워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전화 한통이면 연결되는데 마음의 거리가 멀었구나 싶어서, 전화해준 애선이가 고마웠다. 애기를 낳을 때 감동이 얘기 중에 되살아나 잊고 싶지 않아서 얼른 써놓으려고 한다.

아기가 내 몸 밖으로 나온 후에 피가 아기한테 다 갈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맥이 툭툭 뛰는 탱탱하고 굵고 붉은 탯줄이, 하얗게 껍질만 남아 흐들거릴 때까지 20분. 나와 연결된 채로, 아기는 내 배 위에 엎드려서 쉰다. 나랑 아기 말고는 아무도 없는, 따뜻하고 어둡고 조용한 공간에서, 뜨끈뜨끈하고 축축하고 색색 숨을 쉬는 너무너무 작은 아기를 품에 안고, 등을 가만가만 쓸어주는 그 기분은 정말....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충분한 둘만의 시간. 태반이 나올 때까지 넉넉잡아 한시간을 살을 맞대고 있는다. 애기는 울지 않는다. 이 시간을 떠올리면, 몇 번을 다시 선택한대도 나는 집에서 아기를 낳을 거다.


아기를 낳는데 누군가 끼어들어,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내 몸을 만지고 훑어보고, 내게 자세를 지시하고, 내 아기를 내게서 떼어놓고, 내 아기에게 손을 대고, 울리고, 내 아기에게 알 수 없는 약물을 주사하는 병원의 과정은, 생각만 해도 무섭고 끔찍하다.

나는 원체 겁이 많아서 잘 무서워해서, 이런 견디지 못할 무서운 상황을 피해서 집에서 아기를 낳으려고 한 것이다. 낳아보니 내가 소외되는 과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더 잘 알겠다.

나의 두려움과 망상은 "시스템을 벗어나 다른 길로 갈 수 있을까?" 질문을 던졌고, 결국에는 나를 구원했다. 조산원과 가정분만에서 사례를 찾아냈다. 아기를 낳는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여성의 몸은 이미 알고 있는,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할 수 있어. 조산원 교육을 받고 언니들 얘기를 들으면서 확신했다.

입덧 끝나자마자 매일 한시간씩 산책하고, 음식을 가려서 안좋은 것 안먹고, 현미잡곡밥에다 그때그때 나는 제철음식을 적당히 먹었다. 애기를 잘 낳으려고 열심히 움직인 덕분에 매일 별도 보고 달도 보고 새소리도 듣고 풀냄새 흙냄새도 맡았다. 계절은 계속 변하고, 나는 그 속에 녹아들었다. 내가 점점 건강해졌다. 아이에게 보여주고 함께 살아가고 싶은 세계는 내가 매일 만나는 세상 자체였다. 시골에서 아기를 가지고 배 안에서 열달을 키운 것은, 그래서, 내게 평생의 축복이다.

머리속으로 수없이 낳는 연습을 하고, 닥쳐서는 내 몸으로 실험하고 시도했다. 일생 일대의 용기를 냈다.

살아가면서 언제 또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뭔가 시작하고 낳을 때가 온다면, 그 때 또 필요하겠지. 모두가 익숙하고 알고 있는 것을 의심하고, 내 손으로 길을 내야 할 때, 일생 일대의 용기를 발휘해야지. 애도 낳았는데 뭘 못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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