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춥다. 요새 유독 많이 춥다.

나를 기다리는 일에 몸과 마음을 써야 하는데
뜻대로 안 된다.
너무 추워서 잠바까지 세겹을 겹쳐입고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계획한 일을 못하고 시간이 훅 훅 간다.

이런 적이 또 있다.


+

괴산에서 처음에 살던 집도 그랬다.
오래된 콘크리트 슬라브집이다.
지붕과 벽에는 전혀 단열이 안 되어있고
창은 옛날 창틀이라 틈새에서 들어온 외풍이 굉장했고
보일러는 기름을 아끼느라 잠자는 작은방만 돌렸다.

자는 방에 이불 덮고 누워있다가
이불 밖에 나오면 옷을 많이 입어도 몸이 확 식어서
다시 이불속으로.

어느 날, 밖에는 해가 반짝반짝한 겨울의 한낮.
이불 밖에 못나가고 얼굴만 내놓고 누워있는데
갑자기 모든 게 낯설었다.
여기는 어디냐. 난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

"이게 뭐야! 추워서 하고 싶은 걸 하나도 할 수가 없잖아."
하고 엉엉 울었다.
울면서 더 서러워졌다.

추운게 그랬다.
움직여서 뭘 하려는 마음이
생기다 말고 오그라들었다.
밥하고 반찬하는 것도, 설거지하는 것도,
몸을 씻는 건 커녕 물 한방울 닿는 것도 다 싫다.
몸이 움츠러드니까 기분도 움추러들었다.

천장보고 똑바로 차렷하고 누워서
눈물 줄줄 흘리면서 서럽게 서럽게 우는 나를 보고,
그 다음부터 남편이
아침에 내가 일어나기 전에 먼저 일어나서
난로에 불을 피워서 공기를 훈훈하게 만들어줬다.
난로에 불이 잘 붙어서 타오르기 시작할 때 들리는,
문짝이 잠금쇠에 덜컹덜컹 부딪히는 소리에 눈을 떴다.
그래도 부엌창문은 날마다 얼음이 얼었고
욕실에는 긴 고드름이 열리던 날들이었다.


+


집 계약기간이 곧 끝나서 다행이다.
이사갈 때까지는 당분간 부지런 떨어서
따뜻한 도서관으로 출근해야겠다.

약속을 잡아서 나가는 일이 아니면
'도서관 가야지' 하고 또 이불 밖에 못 나오기를 며칠째다.
이렇게 일기를 썼으니까 내일은 꼭 나갈 수 있기를.


+


집이다.
집이라.

따뜻한 집에서 살고 싶다.
이불 밖에서 잠바를 입지 않아도
옷 두겹만 입어도 몸을 움직일 만하면 좋겠다.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강제로 오그라들지 않으면 좋겠다.
씻으려고 옷을 벗었을 때
갑자기 몸을 파고드는 냉기에 배가 아파서
덜덜 떨면서 폴짝폴짝 뛰지 않으면 좋겠다.

하지만 살 집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이걸 잊으면 안 되겠다.
감사하면서, 한겹을 더 입고 움직여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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