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드라망 블로그에서 재미난 기획연재 발견 ^^
한국근대소설을 한 꼭지씩 소개하는 글이다.

줄거리를 소개하고, 중요장면을 소개하고, 등장인물을 자세하게 소개하는 구조다.
벌어진 사건 하나를 등장인물 각자 각자의 입장으로 다시 들여다보면서, 진실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그야말로 반전드라마! 글로 읽는 반전드라마! +_+ 너무너무 재미나다!

링크는 바로 여기
http://bookdramang.com/m/post?categoryId=580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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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에 소개된 작품 중에, 고딩때 독서실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잠들기 전까지 침대에서 좌뒹굴 우뒹굴 하면서 읽었던 한국소설도 꽤 있다. 읽으면서 새록새록 생각나서 가슴이 뛰고 ㅠ_ㅠ

특히 나도향 작가 [뽕]에 나오는 "안협집" ^^
특이한 이름이라 20년 지났어도 기억난다.



요 책이다.
동아출판사 한국소설문화대계. 1995년 출간.
엄마아빠가 몇 번 이사다니면서 다 버리고, 운 좋게 내가 가지고 있던 몇 권만 남았다.

한국소설 읽는 즐거움에 눈떴다.
글씨는 다 같은 한글인데 작가가 건네는 목소리는 다 달랐다.
이 전집을 너무 너무 좋아해서, 읽다가 스르르 잠들어서 새벽에 눈떠서 불끄고 이불덮고 다시 제대로 자기가 부지기수였다 ^^

장정일 작가 소설 중에 야한 부분을 읽으면서 엄마아빠가 알까봐 어찌나 조마조마 했는지 ^^
우연히 뽑아 읽은 책 내내, 피 토하듯 써낸 여러 단편을 읽고, 제주도 4.3 이야기를 안 것도 이 책.

이광수 작가 무정도 있다. 1월에 문성환 선생님의 한국근대문학 강의 들으러 춘천시립도서관까지 나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것도 이 책이다. 밤에 잠 안자고, 버스에서 창 밖 안보고, 아주 아주 오랜만에 푹 빠졌다. 책장이 훅훅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다 읽었다. 20년 전과 지금을 잇고, 책 속의 이야기를 꺼내 관계를 잇는, 다리가 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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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살 여름, 바다에 빠져 죽을 뻔 했다. 팔다리를 버둥대면서 물을 꿀꺽꿀꺽 마시는 동안, 생사의 고비에 선 사람들이 본다는, 눈 앞에 지금까지의 인생이 영화처럼 펼쳐지는 것을 나도 보았다.

내 인생영화에서 전공공부는 즐겁지도 않고 잘 못해서 힘들었고, 좋아하던 사람과는 제대로 눈을 마주치고 웃어보지도 못했다.

'주눅들고 바보같이 살았구나.
엄마아빠는 어떡하지. 미안해.'

아무리 살려고 열심히 휘저어도 나는 계속 물을 먹는다. 귀에는 파도가 찰랑대는 소리가 또렷히 들리고, 바닷가에 사람들이 노는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물을 먹다가 죽는 건가.'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다.

'내가 태어난 몫을 다했으면 가는 거고
아직 할 일이 남았으면 더 살겠지.'

'죽고 사는 건 나한테 달린 게 아닌 것 같다..'

그러자 스르르 발이 모래에 닿았다. 마침 근처 바다에 누군가를 막 구해낸 구조대가 있어서, 바로 와서 나랑 동생을 건져주었다. 엄마가 구조대원한테 들었는데, 그날 하루동안 동해바다에 빠져서 구조된 사람 8명은 영영 깨어나지 못했고, 나랑 동생만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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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별 탈 없이 돌아왔다. 바닷물 먹은 거 다 토하고 나서는 거짓말처럼 멀쩡하다.

그 다음에는 살아서 고민이다.
살아가려고 고민이다.

다시 공부를 한다면, 같은 시간을 들이는 거면, 작은 것 하나 깨달은 것이 기뻐서 설레고 마음이 쑥쑥 자라는 공부를 하고 싶다. 내 속에 끌어들이고 싶은 것이 널려있는 세계에서 살면 좋겠다, 싶다. 그러다 이야기를 읽는 시간에 푹 빠져들고 행복한 걸 떠올렸다.

'국문학 공부 하고 싶다-'

초중고 12년을 개근상 우등상. 정도를 벗어나본 적이 없다. 참으면 끝나겠거니, 힘들지만 내가 더 노력해야 하겠거니, 의심없이 꾸역꾸역 걸어온 길을 벗어나려고, 처음으로 신나고 (내딴엔 대단히) 불온한 생각을 품었다.

그게 지금까지 저 전집을 소중하게 가지고 있는 이유다. 매일 조금씩 읽는 소소한 시간속에 내 행복이 있는 걸 알려주었다. 죽을 뻔 해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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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휴학하고 수능 준비를 했다. 집에서 공부하고, 모교 속초여고에 가서 모의고사를 몇 번 봤다. 그 때마다 점수가 재학생 최고보다 높았단다. 선생님이 재학생더러 "재수생보다 못해서 되겠냐! 긴장해!" 하고 혼냈다고, 나중에 후배한테 들었다. 허허, 대학에서는 학과 공부를 지지리도 못해서 쩔쩔 맸는데.

그리고 수능. 국문과 지원. 떨어졌다.

정말 다른 길을 가고 싶었다면
학교 이름에 욕심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정도로 절박하지는 않았나.
살고나니 다른 욕심이 내 눈을 가렸나.
행복해지고 싶어서 가던 길 멈추고 바꾸기로 했으면서, 마지막에 뒤를 돌아보아서 변신에 실패!

떨어진 것은 부끄럽지 않은데, 속으로 가로 세로 잰 속물인 내가 넘 부끄럽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텅 빈 마음을 감싸들고 학교로 돌아갔다.

+

남은 학기는 교육학을 복수전공 하면서, 예상치 못한 스승님과 친구와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_+ 김재웅 교수님. 낭만자매들. 박은갱이. ㅠㅠ

이 때 김재웅 교수님을 통해서 새로 만난 교육 이야기는, 눈이 번쩍 뜨이고 떨리고 두근거렸다. 나도 새 세상에 눈뜰 수 있도록 잘 안내하는 사람, 내가 아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못견디는 사람, 배우는 이를 내 모든 삶으로 만나는 용기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애틋하고 굉장한 인연이라는 말이 좋았다.

학교를 다니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전과 다르게 다가왔다. 소중하고, 좋아졌다. 좋아하게 되니 시간이 엄청 빨리 갔고, 무사히 졸업도 했다!

어쩌면, 상황을 바꾸는 답은
언제나 이미 가까이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질문을 바꿀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뿐.
학교를 바꾸고 과를 바꾸지 않아도, 스승을 통해 배움의 세계를 새로 만나면서, 나는 변했다. 발 딛고 있는 곳도 같은 장소지만 다른 세계로 변했다.

요 때 MBTI도 바뀌었다.
물에 빠지기 전에는 ESTP였는데 살고 나서는 ENFP로.
좀 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채로운 감정을 품고 삶에 의미를 두고 사는 사람으로 변했다고, 스스로를 추켜세운다 :-D

하지만 임용고시 준비하면서는 공부가 지옥같아서, 내 길이 아닌가보다, 했다. 임용고시도 떨어졌고 멋도 모르고 지원한 사립학교도 다 떨어졌다.


+

여튼 이것 저것 다 떨어진 덕분에 20대에 불꽃같은 IT회사생활을 했다.

프로그래밍도 해보면 엄청 재밌다! 한번 빠져들면 도중에 끊기는 것이 싫었다. 일이 재밌어서 힘든 줄 모르고 프로젝트 마감 근처때는 밤도 홀딱홀딱 샜다.

신입이라고 예쁨받고, 지금도 그리워하고 연락하는 동료들을 사귀고, 학자금 대출도 다 갚고, 혼자서 전세집을 계약하고, IMF때 부도난 부모님 빚도 좀 갚고, 귀농자금을 모아 귀농도 했다.

지나고 보니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은 것도
나름 좋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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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으면 지금처럼 재미있을까? 싶게, 요새 읽는 책이 너무 재미있다. 나도 적당히 나이가 들었나보다. :-D

그리고 굳이 제도권에 들어가지 않아도 하고싶은 공부를 하는 길을 알게 되었다. 그 길 위에서, 이야기를 듣고 싶고 배우고 싶은 스승을 자꾸자꾸 만나고 있다.

앎이 삶이 되는 공부. 몸이 바뀌고 생각의 길을 새로 내는 공부. 평범한 내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기록해가는 것이 아주 가치있고 중요하다는 공부. 한가지 일을 꾸준히 성실하게 하는 것이 공부. 진짜 공부를 가르쳐주는 스승을 도처에서 불쑥불쑥 만난다. 나를 둘러싼 사람과 세계도, 배우고 나면, 같은 상황이 다르게 다가온다.

그런 지금이 훨씬 더 공부하기 좋은 시절인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이 원하는 때에 이루어지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

다시 한국근대소설 극장으로 돌아가서.

가난, 실직, 병, 배 곪는 아이들 이야기는 참 아프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별 다르지 않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 지나서 이제는 들여다봐도 설움 없이 편안한 '옛날의 이야기'가 아직도 아닌 것 같아서 아프다.

지금부터 내가 혼자 살거나, 아이를 데리고 한부모 가정이 된다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것은 둘째치고, 평생 몸이 축나지 않게 일하면서, 가난하지 않게 살 수 있을까?

채만식 "명일"에서, 멀건 수제비 한 끼 먹은 아이들이 배가 고파 두부장수의 두부를 훔쳐먹는 가난의 모습에 주춤했다. 나는 배고프지 않게 살 수 있을까. 사지 멀쩡한데 괜한 걱정인가.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가난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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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표현도 발견.
"호강이 발꿈치까지 흐르는" (채만식, 명일)
"어색하고 수줍어하고 얼이 나가 있는" (이효석, 산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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