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피아노 배우고 싶어서
독학을 해볼까 검색해보다가 문득
처음 배우고 싶어진 때가 떠올랐다.

+

재즈피아노를 배우고 싶어하게 된 맨 처음은
정준일 선생님의 연주를 듣고서다.


+

2008년쯤인 것 같다. 아직 회사 다닐 때.
우연히 유재하 음악대회 동문들의 음악회를 갔는데, 거기서 머리속이 아득해지는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저런 소리를 짜맞출 수가 있는거지?'

마치 기적같은 피아노를 치고 있는 그 사람은
노란색 덥수룩한 바가지 머리,
정준일 선생님이었다.

'와, 새우깡 초코파이 광고음악을
재즈로 편곡하면 저렇게 들릴 수도 있구나.'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고, 황홀하고,
들은 소리를 까먹을까봐 안타까웠다.
넋을 잃고 들었다.

그날 공연은 준일샘이 너무 강렬해서 다른 분은 잘 기억이 안난다. 심지어 스윗소로우(친구가 그분들 보러 가는데 따라간 것임)도 같은 무대에 섰는데, 전혀 모르겠다;;


+

"저 홍대 에반스 아카데미에서 레슨해요." 광고 잘 들어놨다가, 집에 돌아와서 고민좀 하고, 용기를 내서 학원에 등록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고, 다시 생각해도 참 잘했다 ㅋ
덕분에, 무대에서 와~ 하고 딱 끝나지 않고, 평생 어디서 만나도 "선생님!"하고 부를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팬이면서 제자!
(귀농한 제자를 기억하실진 모르겠지만 ㅠㅠ)

배우러 오게 된 이유 얘기 했을 때, 선생님이 거기 있었냐고 깜짝 놀라면서 웃었다. 그 공연장에 있던 모두가 그 광고를 들었어도, 정말로 배우고 싶어서 찾아간 사람은 아마 나 뿐이지 싶다. 나 말고 배우러 온 학생이 또 있다는 얘기는 없던 걸로 봐서.

어쩜 나는 이렇게 제대로
말도 잘 듣는지 ㅋ


+

본격 레슨 시작.

시범을 보여주시는데 와...
준일샘 연주에 나는 또 넋을 잃고.
이것은 웬 호사인가.
배우러 왔다가 나 혼자 듣는 미니 콘서트가!!!

준일샘 덕분에 리얼북을 처음 알았고
미스티가 그렇게 아름다운 곡인지도 처음 알았다.

무척 진지한 수업 중 간간히 던지는 유머 속에,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애환이 마구 전해져왔다.

죽을둥 살둥 숙제내주신거 외워갔다. +_+
그래서 "잘한다 잘한다" 칭찬칭찬 받으면서 재미나게 배웠다.

즐거운 시간은 오래 못갔다. 선생님이 사정상 그만두시고, 나도 곧 귀농했다. 빌에반스 보이싱 까지 배우고 진도를 제대로 나가려는 참에 그만두었다. 이 때 배운 걸 8년째 써먹고 있고, 전에는 못치던 새 코드를 칠 때마다, 그 배움의 시간이 떠올라 고맙고 먹먹하다.

피아노에 손만 대면 콸콸콸 흘러나오는 재능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다니. 하... 다시 떠올려도 넋이 나갈 듯 아득하다.

귀농하고 결혼할 때도
준일샘이 축하한다고 연락주셨다.
어찌나 반갑고 고맙던지 ㅠ_ㅠ

지금도 잘 지내실지 모르겠다.
엄청 엄청 잘되면 좋겠다.


+

전에 검색해보니 메이트 정준일만 떴다.
사진이 우리 선생님이 아니었다.

"왜 우리 선생님이랑 같은 이름을 쓰는거지!"

했는데, 자꾸 보니 같은 사람이었다;;;
엄청 말끔한 모습으로 활동하시는 듯!

눈이 보일락 말락한 예전 노란 바가지머리가
내 눈엔 훨씬 잘 어울리는 것 같다.


+

그리운 시간을 양분삼아 힘내야지.
다시 기회가 생기면 잘 배워야지.
혼자서 하기는 너무 어렵고 엄두가 안난다.
얼기설기라도 안내를 받으면 좋겠다.

배우고 싶다, 재즈피아노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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