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부지요
그기 뭐요
당최 어드로 가지 말아요
마카 갖다줘요...."

생각지도 못한 강원도 사투리가 흘러나와 깜짝 놀랐다. 연기자가 배워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우리 이모 삼촌 외삼촌 외숙모 할머니 할아버지 사촌언니 사촌오빠를 만나면 늘 듣던 그리운 말소리. 진짜 강원도 말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물렁물렁 울렁울렁해졌다.

어린이 내복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부터 하....
"시장가면 많은데 사주지도 못하고.. 이렇게 예쁜데..."
울음이 속 깊은데서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세살 여섯살. 내 새끼들의 나이다. 할머니가 나같고 내가 할머니 같았다. 울음이 저절로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다가 영화관에서 탈진할 뻔 했다.
혼자 오길 잘했다. 보러 오길 잘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할아버지 노래소리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끝났네 하고 우르르 나갔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할머니도 수줍게 노래를 시작하는데 아ㅠㅠ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해요.."

둘러보니 그 많던 사람 중에 할머니 노래를 들은 사람은 늦게 나간 부부랑 나밖에 없네. 보러 갈 분은 엔딩 크레딧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듣고 자리를 뜨기를.


2014.12.23 충무로 대한극장 오후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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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모감독 인터뷰 중.
(페친 정신님이 알려줬다)

"할아버지 건강은 똑같은 변수였다. 그래서 중단될 수 있었는데, 우리를 구출한 건 할머니다. 할머니께서 할아버지가 아프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내복을 사러 가셨고, 그걸로 다른 세계를 열어버린 거다. 할머니로서는 죽음이라는 게 생명이 단절되고, 관계가 끊어지는 게 아니었던 거다. 이별이 사랑의 한 과정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 생각이 있으셨고, 영원한 사랑으로 가는 중간지점 또는 중간다리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그걸 우리한테 보여줬던 거고,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는 게 어떤 것인지 본 거다."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397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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