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가 추천하는 책이라니.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하다.
앞으로 멏 번이고 써야 할 텐데
그때마다 이 부끄러움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oTL

소식지에 이대로 실릴지
잘려서 실릴지
안 실릴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썼다.
다 써서 보낸 것에 의의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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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나는 누구인가. ‘사서가 추천하는 책원고를 쓴다고 몸부림치고 있는 걸 보니 이번 생은 사서인가부다. 벌써 며칠 째인가. 당을 충전하면 뭐라도 써질 거라며 영양제 섭취하듯 빵을 먹지만 결국 밤마다 거하게 당만 충전하고 만다. 어쩌면 춘천의 동네빵집 탐방기를 더 잘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면 써지겠지 하면서 일단 잠을 자면, 평소보다 일찍 자고 평소대로 일어나서 몸은 개운하고 이 미세먼지 통에 눈도 산뜻하다. 마감의 압박은 야행성 동물도 인간으로 만드는 생활교정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책이 좋아 일하면서 책을 추천하는 글쓰기를 괴로워하는 사서라니. 저 우주 어딘가에 나처럼 아이러니한 운명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김보영 작가 단편집 <진화신화>에 수록된 단편소설 지구의 밤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이야기다.

 

우주 어느 행성에, 지구에서 보낸 메시지가 도착한다. 단 한 문장이다. ‘지구의 밤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 행성의 학자들은 이 문장이 말하는 하늘이 어떤 모습인지 눈에 그릴 수가 없다. 이 행성의 하늘에는 하루 종일 빛이 있다. 공전주기 자전주기 내내 열에너지와 빛에너지가 충분하고, 에너지가 충분하니 사람도 동식물도 쉼 없이 움직인다. 메시지를 분석해서 지구의 하늘과 대기와 생태환경을 알아내려하지만, ‘별은 빛에 가려서 늘 안 보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하는 질문에서 연구는 더 나아가지 못한다.

이 행성에 사는 주인공 화자는 아무 곳 아무 때나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증상을 앓고 있다. 화자는 같은 증상을 앓는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몸이 회복되는 임상사례를 보고 이 증상을 낫게 하지는 못해도 조절할 수는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다음부터는 의식을 잃을 기미가 보이면 몸이 무거워지는 상태를 극복하려고 애쓰는 대신, 미리 빛과 소리를 차단해둔 공간에 들어가서 의식을 잃기를 선택한다.

화자는 우연히 동굴 입구에 빛이 적게 드는 곳에서 자라는 식물이 빛이 들지 않는 시간에는 죽은 것 같은 모습인 것을 본다. 더 자세히 관찰해서 분석한 결과, 얻을 수 있는 에너지의 한계가 있는 생물이 에너지를 절약하면서 일정한 시간의 어둠을 견디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치 죽은 것 같이 의식을 잃는, 자신과 같은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에너지가 부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에너지를 절약해야 살 수 있는 몸이라니. 여기서 화자는 나처럼 빵을 섭취하고 나는 왜 이 모양으로 생겼을까하고 자학하는 대신 질문을 던진다. ‘지구는 어떻게 별이 빛나는 하늘을 보는 걸까? 자전주기에 일정한 시간의 어둠이 있다는 걸까? 행성 전체에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은 걸까? 그렇다면 지구 사람과 생물도 동굴 앞 식물과 나처럼 주기적으로 의식을 잃을까?’ 질문을 따라 드러나는 우주와 지구와 밤과 잠 이야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책에서 이어진다. SF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 낯선 아름다움으로 다가와 경이감에 사로잡히는 순간을 선물한다.

 

화자는 가장 당연하게 여긴 것에 물음표를 달았다. 의식을 잃는 몸을 나아야 하는 질병으로 여기지 않았고, 다른 행성도 자신의 행성처럼 하루 내내 빛이 있고 에너지가 충분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먼 곳에서 날아온 단 한 문장의 메시지를 해석해가는 정확한 질문은, 같지 않은 것을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보는 관점에서 나왔고, 이런 의심과 질문이 결국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구하고 다른 우주를 연다.

나도 질문을 던져본다. 지구에서는 사서가 추천하는 책원고 앞에서 절규하면서 오만 잡생각에 스스로 뛰어들지만, 다른 우주에서는 책에서 책으로 이어지는 시공간 여행을 개발하는 일이 일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운 시절인연, 혹은 마주칠 시절인연을 책을 매개로 만나러 가는 8차원 시간여행 개발 전문 사서 말이다. 배명훈 작가 단편집 <예술과 중력가속도>에 수록된 단편소설 예비군 로봇에서 RFID 태그 전문 김은경 요원이 태그로 기계군을 교란해서 화성을 구한 것처럼, 우주를 향한 나의 도서관 로망(망상)이 누구를 구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언젠가 우주여객선이 완성되면 나는 관장님, 저를 에오루파 도서관 사서로 파견해주십시오.” 하고, 우리은하 도서관사서연맹 태양계 지부장인 김성란 관장님이 적임자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인류의 미래는 노사서의 상상에 달렸습니다. 같이 가봅시다.” 하는 날을 두근두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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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책
장르 : SF

김보영 단편집 <진화신화>
배명훈 단편집 <예술과 중력가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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