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상상하면, 사람을 상상하게 되기보다는 그 사람의 책을 상상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KDC에 따라 100번대 책과 200번대 책을 합쳐 15퍼센트, 300번에서 500번대의 책이 30퍼센트, 600번에서 900번대는 골고루 50퍼센트, 정기간행물도 한 5퍼센트 정도 가진 남자면 좋겠다고 말이다. 책을 또 너무 많이 가진 사람이라 바닥에 책 탑을 쌓게 되면 그건 곤란한데... 책을 막 접지도, 음식을 먹으며 읽지도, 햇빛이 들어오는 데 둬서 종이 색이 변하게 하지도, 띠지를 벗겨내 버리지도 않는 사람이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p.213




“무료해. 무료해서 죽을 것 같아.”
친구가 말했을 때 한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말?”
“너는 안 그래?”
“나야 책만 있어도 잘 지내니까.”
“아, 나 요즘 덜 읽었나. 재밌는 것 좀 추천해봐.”
한나는 고전에서 한권, 신간에서 한권, 만화책 한권, 과학책 한권을 친구에게 추천해주었다. 권과 권 사이에는 고민의 시간이 있었지만 그리 길지 않았다.
얼마 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사는 게 무료하다는 건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아. 덕분에 재밌게 읽었어.”
그렇게 말하는 친구의 목소리에 생기가 느껴져서 기뻤다.

-p.214




아무도 한나가 사서인 걸 모르지만 한나는 사서로 살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 몰라도 비밀리에는 사서일 것이다. ...... 수레와 책의 무게가 한나의 무게를 지탱해주었다.

-p.214



- 정세랑, <피프티 피플>, 김한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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