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처음으로, 6년만에, 휴가를 다녀왔다.
애들 없이 무려 혼자 9박! :-D

일년 내내 한순간도 몸과 마음이 떠나지 못하고 에너지를 퍼부은 도서관 일에도 살짝 지쳤고, 농어촌 희망재단 프로젝트 마감 서류 만들면서 왕창 지쳤던 터라, 수유너머R 학술제에 맞추어 아예 작정하고 쉬었다.

일주일 내내 수유너머R 오픈 세미나랑 송년회까지 참석하고, 샘들 따라 노들야학도 가봤다. 너무 듣고 싶었던 문리스 선생님의 연암 박지원 강의도 듣고, 혼자 영화도 보고, 서점에도 갔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배고파서 손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두근 할 때까지, 밤에 자기 전에는 피곤해서 얼굴이 책에 곤두박질 할 때까지, 책 읽고 자료 읽고 일기 쓰고 그랬다.

돌아오니까 언니들이 휴가 다녀왔다면서 왜 이렇게 얼굴이 반쪽이 됐냐고;;

(잘 못챙겨 먹어서 그래요;; 너무 오랜만에 아무것에도 쫓기지 않고 책읽다 보니까 좋아서 배고픈거도 까먹고, 지하철 시간 맞추다 못먹고, 영화시간 맞추다 못먹고, 책구경 하느라 정신이 나가서 어~ 하다보니 못먹고;;)


그랬었는데.
다시 내가 되었다! 했더니.
돌아온 날부터 말짱 도루묵이 됐다.

밥을 먹는 것도, 밤에 자는 것도, 아침에 눈을 떠서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식구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다음 순간에 돌아오는 일이 불어나서 고통스럽다. 그래서 늘 다음 일 생각하고 움직이고 옴짝달싹 못해서 힘든 건 똑같지만, 힘들어하는 내가 다르게 낯설다.

어쩌면 이런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여기 삶이 전부가 아니었고, 저쪽에서 다르게 살아봤더니, 마음이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오직 나를 위해 혼자 시간을 쓸 때와 너무 많이 다르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래서 애들 재우면서 나도 기절하려는 순간,
기를 쓰고 일어나서 일기를 쓴다. 다르게 살고 싶은 내 마음이, 나의 우주를 여는 새 길을 만들어 내길 간절히 바라면서. 여전히 변함 없는 자리로 돌아왔지만 다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가족도 공동체도 최선을 다해 새로 만나고, 새로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는다.


문리스 선생님 강의 중에 여행은 길 위에서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을 겪으러 가는, 이제까지 나와 다른 나를 만나기 위해서 간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 여행 제대로 다녀온 것 같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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