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누군가 마음에 들어오면
절대, 절대 연애하지 말아야지.
그냥 친구가 좋겠다.

안 들키게 조심하다 혹 꼬리밟혀 추궁당해도
아니라고 끝까지 딱 잡아떼고
봄여름가을겨울 오래오래 사이좋게 지내야지 :-D

만나면 그저 반갑고
(늘 하던 설레발대로) 물개박수하면서 이야기 나누고
'아, 참 좋은 사람. 고맙다. 나도 더 좋은 사람이 될테야!' 하고 두 주먹 불끈 쥐는,
그런 우정이 좋겠다.

함부로 가깝고 감정 많이 쓴 건
격정의 20대와 눈물의 30대를 탈탈 털어서 다 끝낸 걸로 하고,
이젠 아름다울 수 있는 거리에서
적당히 무심하고 적당히 눈감아주면서 편안하면 좋겠다.

한나 아렌트랑 하인리히 블뤼허처럼
나랑 같이 이야기하는 게 사는 낙 중에 하나고
나도 벗과 얘기하는 게 사는 낙 중에 하나인
그런 우정이면 좋겠다.



+


글쓰기 공작소 사랑과 이별반 2강에서
<하나코는 없다> 를 읽었다.

남자들은 아내한테는 편지를 쓰지 않지만
하나코한테는 편지를 쓴다. 왜 하나코한테만?

편지를 쓰면 상대를 인간으로 보게 되기 때문에
가부장제를 유지할 수가 없단다.
(편지를 쓰는 게 그런 의미일 줄이야)

가부장제 안에서는 남자도 여자도
시스템 안에서 선택당하고 살아가려고
자기 안의 어떤 부분을 절취당하고
가부장제에서 용인되는 부분만 보여준다.
절취당한 남자의 어떤 부분을 (아주 바닥인 것까지 다)
가부장제 안에 있지 않은 하나코에게는
보여줄 수 있었던 거라고.



+



나도 하나코처럼 어떤 부분에서 자유다.

가부장제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선택될 만한 지표,
가부장제 안에 있는 여성의 미덕인
어떤 지표를 보이지 않아도 된다.

살림을 하고
남편을 잘 뒷바라지하고
아이를 잘 돌보면서
예쁘고 상냥하지 않아도 된다.
수긍하고 수용하고 끝없이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

평생을 그러지 않아도 된다.
내 발로 걸어나왔고
다시 들어갈 일은 없다.
내 멋대로 요망하게 살 거다.
내 안의 n-1개 인격을 골고루 다 쓸 거다.


벗님들도 (남녀노소 상관없이) 나한테
멋지고 반듯한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절취당한 줄도 모르고 절취당한 어떤 부분,
절취당하고 덮어둔 아픈 부분,
절취당하지 않으려 꿈틀대는 발칙한 부분을
서로 토닥일 수 있으면 더 없이 감사하고 충분하겠다.
같이 나눌 만한 온갖 무지개색 이야기가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편지를 종종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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